
대중음악은 예술의 전당에서 상연할 수 없다는 예술의 전당 측의 주장이 기억난다. 대중음악 뮤지션들의 입장에서는 뭔가 답답하고 억울한 이야기였다. 물론 예술의 전당같은 완벽에 가까운 순수예술 공연장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이미 상업적으로 성공한 대중음악이 굳이 순수예술공연들을 짖밟고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해야되는 이유가 뭐냐는 그런 복잡한 문제들도 있었지만, 요즘 같아서는 사실 애초에 우리들에게 대중음악공연을 예술의 전당에서 해야겠노라고 생떼를 쓸 만한 자격이 있나 생각이 들어 얼굴이 붉어진다.
이런 일이 있었다. 30일간의 파견을 마치고 복귀하기로 예정되어있던 그 날 아침, 나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엄청난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날 아침, 마을회관 TV속에서는 최근 가장 잘나간다는 최신 가요 뮤직비디오들을 죽 이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군인들은 장교, 부사관, 병사 할 것 없이 TV앞에 모여들어서 입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뮤직비디오에 집중하고 있었다. 뒤에서 잡지를 보던 나는 일고여덞번째 곡 정도가 흘러나올 때 비로소 울컥 치밀어오르는 것을 겨우 참아냈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이 세대는 정말 내 생각대로 저주받은 세대란 말인가. 하나같이 뽕짝 멜로디에 그나마 따라쟁이가 되는 것조차도 제대로 못하는 엉터리 음악들 뿐이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음악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서 눈감을 필요도 없었고 그냥 입닫고 귀틀어 막고 싶었다. 분명한 것은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좋은 음악들이 많았단 말인가. 우리 아버지세대, 그리고 삼촌세대의 음악들을 추억해보면 이름만 들어도 눈시울이 따뜻하게 젖어오는, 간주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기 시작하는 그런 가수들과 음악이 얼마나 많았느냐는 말이다. 그 세대가 보고 자란것은 들국화, 산울림, 송골매같은 락밴드와 신촌블루스, 대전블루스라고 이름붙이며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수많은 블루스 뮤지션들과 조용필, 심수봉같은 대단한 보컬들, 김광석, 김현식, 유재하같은 전설적인 음악가들이었다. 그 아들세대인 우리들이 듣고 자란 것이 신승훈, 김건모, 이소라, 이적, 박효신 같은 사람들이고 그 시절의 외국음악 따라쟁이들이라는 것이 바로 서태지, 듀스, 솔리드인 셈이었으니 얼마나 우리는 축복받은 세대를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아직도 우리음악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본다. 하지만 요즘은 해도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왜 우리는 그런 대단한 선배들을 두고도 한발 앞으로 내딛지 못하고 뒷걸음질에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아무리 해도 돈은 없고 아무리 좋아도 팔리지는 않으니, 팔리는 것을 만들려면 새로운 것은 아무래도 겁나서 못하겠고, 결국 성공공식을 따르자니 따라쟁이가 될 수 밖에 없고, 너도나도 하다보니 색깔도 없고, 정체성도 없고, 거기에 센스마저 없으면 도태되고, 그런게 지금 가요계의 현주소다. 센스가 없으니 결국 얼굴이 예쁘장한 애들을 내세우던지, 바지를 벗기던지 둘 중 하나 그렇고 그런 그룹이 되는거고, 소녀시대, 원더걸스가 성공하면 줄줄이 소세지로 걸그룹만 디립다 파는거고, 그런게 지금 우리 대중가요라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일단 인기만 많아지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못가리고 베껴놓기만 해도 입다물고 있으면 1위하는 세상인데, 그런 허접한 꼴을 보면서도 허접한지 모르고 팔짱끼고 대단한 것 보는 사람처럼 이건 좋으네 나쁘네 이러쿵 저러쿵 한마디씩 보태는 게 우리 대중들이고 말이다. 그러고는 결국 돈주고 사는 일은 없으니 돈벌이가 급급해진 작곡가들은 또 옛 명곡들을 얼토당토않게 망쳐놓고 리믹스랍시고 싱글로 발매하고 결국 완성도 있는 앨범은 나올 겨를이 없다. 결국 앨범이란게 뮤지션들의 음악적인 욕심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와서 말장난할 구실을 만드는 것에 불과해지는 셈이다. 그런 것들을 듣고 자란 세대가 싸놓은 똥은 역시 그런 비슷비슷한 것 뿐일테니 그게 어쩌면 흔히 악순환의 고리라고 불리우는 것일 것이다.
이건 아니다. 참을성있게 지켜봤지만 너무 아닌 방향으로 벌떼처럼 몰려가고 있다. 세계 대중음악의 주류는 우리나라 TV에 없다. 이 나라에서는 주류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니아고, 주류음악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언더그라운드고 인디밴드다. TV에 나오는 가수들은 어느 하나 자기가 뭘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단지 연예인이 되기를 꿈꾸는 어린 아이들뿐이고, 많은 대중들이 열광하는 것도 그런 가짜들이니 '예전에는 국민학생들이 선호하는 대중음악이나 악세서리를/대학생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초등학생들이 선호하는 대중음악이나 악세서리를/대학생들도 똑같이 선호한다./대학생들과 초등학생들이 똑같은 수준의 문화를 즐기고있는 것이다./한마디로 오늘날은 모든 문화가 정체성을 상실해 버렸다.'는 이외수 선생님의 말도 괜한 소리는 아니다. 이제 더 이상 시청자들은 좋은 음악을 듣기 위해 가요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쁜 여자가수의 섹시한 의상을 보기 위해 가요프로그램을 시청한다. 결국 별처럼 수 많았던 훌륭한 음악가들은 하나둘씩 TV라는 매체 자체를 포기했고, 스타는 있을지언정 뮤지션은 없다.
얼마전 디스 이즈 잇을 보았다. 마이클 잭슨은 팝음악 역사상 최고의 스타였고, 또한 전설적인 음악가이기도 하다. 인기를 얻으려면 당연히 하고싶은 음악을 포기해야된다는 식의 분위기가 팽배한 이 나라 가요계는 깊이 반성을 해야한다. 우리나라 기획자들은 타협하고 고민한 결과물과 단순한 엉터리 졸작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좋은 음악가들이 자기 색깔을 가진 좋은 음악으로 사랑받는 나라가 되려면 대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지 모르겠다. (비틀즈, 밥 딜런 세대부터 뮤지션이 원래 가지고 있던 고유의 색깔을 잃었을 때, 배신감을 느끼고 슬퍼하던 영미권의 팝음악팬들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직 멀었다.) 어쩌면 우리 대중들이 엉터리 뽕짝댄스음악을 기꺼이 1위로 만들어주게 된 것은 엉터리 뽕짝댄스음악 밖에 만들어 들려준 적이 없는 음악가들의 죄가 크다. 무한도전에서 일회성 음악을 만들때마다 인기 순위에서 밀려나는 그런 고만고만한 음악들은 이제 그만 좀 찍어냈으면 좋겠다. 가슴이 답답하다. 어서 내가, 그리고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진취적인 음악가들이 돈을 쥐고 힘을 키워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에 가는 것만이 해결책인 듯 싶다. 이제 나도 공중파에서 정말 그럴듯한 음악을 듣고 기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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