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것만 같아

일단 이 곳은 지낼만 하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나는 이 곳에서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울 정도로 생산적인 일에 목숨을 걸고 있다.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고. 좋은 시를 읽고, 좋은 음악을 듣고 생각에 잠기고. 그런 것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느끼고, 가끔은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구름을 보고, 검은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고, 강아지와 비를 맞으며 달리기하고, 풀을 밟으며 걷고, 힘들어도 누군가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그렇게 내 나이만큼, 아니 그보다 더 깊어지고 있다.
반드시 2년 뒤에 나는 지금 현재의 내가 절대로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기타에 미쳐있는 나는 그때 쯤이면 꽤 괜찮은 기타리스트가 되어있을 것이고, 무대 위에서 나의 타임코스모스를 매고 아름다운 연주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찬재 수석트레이너의 알찬 케틀벨 트레이닝으로 나는 퍼렐 윌리암스의 날렵하고 탄탄한 몸을 가지게 될 것이다. 줄넘기 하나로 술, 고기 먹을 거 안먹을 거 다 먹어가면서 한달반만에 15키로를 뺐던 나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발휘한다면 이번에도 아무 것도 아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은 이 안에서밖에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안에서 해내지 못하면 나가서도 못한다. 밖에서는 너무 할 일이 많고, 재미있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가만히 시간을 죽이고 있으려면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여기 2년이나 있는데, 그마저도 시간을 죽이고 앉아 있으면 절대 안된다는 강박관념때문에 가끔은 발끝이 저려온다.
뭐 어쨌든 나는 어찌보면 나는 이 곳에서 (심지어 돈까지 받아가면서) 심도있는 자기 개발을 하는 중이다. 그런 나는 여전히 운이 좋고, 나의 삶은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가슴 한 켠이 답답해지는 이유는 이 울타리 바깥에 내가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변변한 노래 한 곡도 제대로 불러보지 못했다. 입밖으로 노래 소리 비슷한 것이라도 낼라 치면 수도없이 고민하고 눈치를 봐야만 했다. 나는 취미로 노래방에 다니는 동네 가수들에게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하라는 말을 듣지 않기위해 매일 소심해져야만 했다. 소리죽여 노래하느라 오히려 나중엔 지금보다 노래를 더 못하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 솔직히 겁도 많이 난다. 한번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산 적이 없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언제든 했어야 했는데, 여기는 사정이 그렇지가 못하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스트레스다. 하지말라고 하면 하지말아야 되고, 싫어도 해야되고, 하지 말았으면 하는 말들을 내게 아무런 고민없이 해버리는 곳이 바로 이 곳이다. 그래서 내 자유로운 마음은 자꾸만 터져버릴 것 같이 뜨겁게 열이 오른다.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만큼 나는 강하지만,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진짜 나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 마음내킬 때마다 걸었던 홍대 앞, 마음내킬 때마다 들이켰던 맥주와 보드카, 데킬라. 마음가는 대로 도쿄의 시내 한복판을 누비던 내가, 마음내키는 대로 시드니의 해변에서 낮잠을 자던 내가, 심심할 틈없이 마이크에 대고 데모작업을 하고, 레코딩하고, 기타를 치던 그 때가, 길거리 한복판에서도 소리높여 노래할 수 있었던 그 때가 너무 그립다. 그때가 정말 좋았던 시간이라는 것을 그때도 알았고 지금도 안다. 이미 철이 든 사람들은 나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격증이 필요없는 삶도 있음을. 이것이 나의 방식이고, 즐거움이고, 진짜고, 의미고, 선물이고, 그 모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하면 역시 어려서 그렇다고 대답해주겠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그렇다고 하면 나는 이기적이라고 백번이고 천번이고 대답해주겠다. 그게 다 사실이라면 어차피 나는 계속 어리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나고 아니면 더 이상 내가 아니니까.
어쨌든 그런 생각들로 가득차 요새는 혼자 있으면 한숨이 자꾸 나온다.
그나마도 여기 이 곳에 조차도 나를 진짜로 이해해주고, 내 방식, 철학, 미래를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친구가 한 명 있다는 것이 나의 운이라면 또 운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잘 해왔고, 잘 해나갈 것이고, 이 산을 넘으면 정말 그때부터는 온 세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그 전에 이 늦은 밤까지도 식을 줄 모르고 끓어올라 터져버리기 일보 직전인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노래 한 곡을 들려주고만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정말 내 마음은 터져버릴 것만 같아.
Monster, The Life/Bluedays 2009/08/1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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