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휘파람 호이호이 불며
교외로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문득 옛일이 생각키움은 ―
그 시절이 조아졌음이라
뒷산 솔밭 속의 늙은 무덤 하나
밤마다 우리를 맞아 주었지만 어떠냐!

그때 우리는 단 한 번도
무덤 속에 무엇이 묻혔는 가를 알려고 해 본 적도 느껴 본 적도 없었다
떡갈나무 숲에서 부엉이가 울어도 겁나지 않었다

그 무렵 나는 인생의 제1과를 즐겁고 행복한 것으로 배웠다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하늘 높이 단장 홰홰 내두르며
교외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그 날 밤
성좌도 곱거니와 개고리 소리 유난유난 하였다
우리는 아무런 경계도 필요없이 금모래 구르는 청류수에 몸을 담갔다
별안간 뇌성벽력이 울부짖고 번개불이 어둠을 채질했다
다음 순간 나는 내가 몸에 피를 흘리며 발악했던 것을 깨달었도
내 주위에서 모든 것이 떠나 갔음을 알았다

그때 나는 인생의 제2과를 슬픔과 고적과 애수를 배웠나니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깃폭인양 옷자락 펄펄 날리며
교외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낙사랑의 잣는 실 가늘게 가늘게 풀린다
무엇이 나를 적막의 바다 한가운데로 떠박지른다
나는 속절없이 부서진 배 쪼각인가?

나는 대고 밀린다
적막의 바다 그 끝으로
나는 바닷가 사장으로 밀려 밀려 나가는 조개 껍질인가?
오! 하늘가에 홀로 팔장끼고 우―뚝 선 저―거무리는 그림자여…….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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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4 02:22 2008/11/24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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