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줄곧 친구였다.
우리는 줄곧 친구였다. 늘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신촌 한복판 비어제스의 창가 가장 구석진 자리로 향하곤 했다. 그 자리는 우리를 위해서 비어있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자리에 앉아서 유심히 지켜보다가 자리가 비는 것을 보자마자 서빙을 불러 그 자리로 꼭 옮겨 앉아야 했다. 우리는 늘 오징어버터구이에 맥주 6병을 시키면 할인가에 한세트를 준다는 메뉴를 시켰다. 친구는 버드와이저 병 입구의 까슬까슬한 느낌을 좋아했다. 친구는 버드와이저가 저렴하면서도 왠지 싸구려같아 보이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우리는 비어제스에서 이런저런 맥주를 다 마셔봤다. 친구는 맥주의 톡쏘는 맛을 좋아했다. 나 역시 그랬다. 친구는 그래서 흑맥주를 더 선호했다. 우리는 그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창밖을 바라봤다.
우리는 음악으로 함께 했다. 처음엔 음악 만이 우리를 묶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하나둘씩 차근차근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해나갈 수 있었다. 친구는 나를 만나면 언제나 바쁘게 아이팟을 뒤져 이어폰을 내 귀에 꼽아주곤 했다. 그 시절 친구는 ‘When we get by’ 를 유난히 좋아했다. 그 그루브 감이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최고의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When you think of me'에 빠져있었다. 중반부의 스캣이 에릭베네인지 아닌지에 대해 같이 잠시 고민해보았다. 우리가 그 시절 함께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우고 들었던 수많은 노래들을 지금은 듣지 않지만 우연히 그 노래들을 다시 듣게되면, 우리의 진실했던 어린 날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에 잠기고 만다. 태어나서 가장 더운 여름을 보냈던 2005년 그 어느 날도 우리는 공연장을 찾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언제나 언젠가는 우리가 저 무대 위에 서 있을 것임을 확신했다.
우리는 순수했다. 그 시절의 우리는 남들보다 어리고 잘났었다. 우리 눈 속에 들어오는 세상은 답답한 것 투성이였고, 불만스러웠다. 참을 수 없이 더러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친구는 목소리 높여 말했다. 나도 목소리 높여 화답했다. 가진 자가 누린다는 것을 알았고, 가진 자만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더러운 세상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우리가 가진 자가 되었을 때 우리의 오색찬란한 빛깔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우리는 단 한번의 기회만 잡으면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는 확신에 찬 기대감에 젖어 있었다. 친구는 늘 “내년에 대학만 붙으면, 본격적으로..”라고 운을 떼면서 나에게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내게 양심을 말했고, 더러운 것을 멀리하기를 바랬다. 우리는 리스펙트에 대해 논했고, 그 색깔을 잃은 것들을 동정했고, 거짓됨을 혐오했고, 진정함을 동경했다. 그 친구는 어리숙했던 내게 하나의 사상이었다.
친구는 나를 언제나 응원했다. 나를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약한 소리를 쉽게 내뱉는 내게 뜨거운 용기를 주었다. 내가 스스로 일어나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기 전까지 친구는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겨울이 되었고, 우리의 두번째 수능이 가까워졌다. 내가 처음으로 공연장에서 공연할 수 있었던 것은 어비스의 이름으로 했던 긱에서의 공연이었다. 긱은 그때나 지금이나 고등학생들도 쉽게 빌릴 수 있는 싸구려 공연장이지만 내가 긱에서 처음 공연했을 때의 그 설레임과 감동은 당시 내게는 큰 의미였다. 원래대로라면 친구는 공부를 해야 했지만, 그날 내가 긱에 섰을 때, 친구도 거기 있었다. 우리는 무대 위와 아래에서 각자의 벅찬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해 겨울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친구는 피할 수 없는 삼수의 길목에 서게 됬고, 우리가 지난 1년간 이야기했던 수많은 하늘색 꿈들이 거친 한숨 속에 흐려진 채 비틀대고 있었다. 우리는 서울역 던킨 도너츠 한 켠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20분 동안 휑한 표정으로 앉아 있기만 했다. 하지만 숨막혔던 그 해 겨울도 친구의 벅찬 대학 합격 전화로 막을 내리고 우리는 함께 2006년의 봄을 맞이했다. 친구는 이제 진짜 시작이라고 굳게 되뇌였다.
외할머니댁에서 나와 친구와 함께 홍대 앞에서 살게 된 이후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게되었고 더 많은 것들을 서로 맞춰가야만 했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앞으로 우리에게 찾아올 더 큰 어려움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서로의 행복을 지켜보았고, 때로는 서로의 눈물을 지켜볼 때도 있었다. 많은 시간을 함께 했고, 우리에겐 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았다. 이미 우리는 각자 스스로의 힘으로 똑바로 앞으로 걸어갈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다리와 빛나는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눈물에서 사랑을 배웠고, 배려를 배웠고, 인내를 배웠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러 2008년 여름이다. 속절없다 속절없다 했지만 부지런한 놈에게 친절하고 게으른 놈에게는 한없이 야속한 것이 이 시간이라는 놈이겠지.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비어제스에 가지않고, 버드와이저 보단 아사히를 좋아하고, 맥주보단 데낄라를 마시고, 내가 아이팟을 가지게 되면서부터는 더 이상 이어폰을 나눠끼지도 않게 되었다. 나 또한 건영이처럼 군대에 가게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렇게 되면 내가 전역하는 2011년이맘때 쯤에야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커다란 백지를 함께 칠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뜨거운 우정도, 애타는 사랑도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던 시간들이었는데, 맘졸이던 대학 입학에서부터 어느새 졸업이라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2005년 이맘때 쯤 맥없이 슬퍼하던 나에게 "대범, 너의 중심을 믿어라" 라고 말해주었던 친구를 기억한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단 한순간도 나를 잃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건영이가 늘 나를 믿어주었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에게 더욱 엄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우리의 남은 인생이 지난 3년 보다 더 초스피드로 진행되는 고난이도의 화려한 게임일 것을 알기에 그 떨리는 긴장감을 감출 길이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예정이지만 나는 진정 우리가 함께했던 지난 3년의 뜨겁고 진실했던 날들을 기억하고, 바로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임을 알기에 웃을 수 있다.
intro)
Ladies and gentlemen 나는 말합니다
자세히 들으시오, 내가 말하려는 것은
verse1)
시간이 벌써 흘려 어느덧 난 어른이 됐어 어리던 날의
시작이 불완전한 채 끝나고 내 차례야 날 불러 남들의
시각이 편견의 안경을 꼈네. 그래, 어쨌든 간에
신분증 숫자는 벌써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넘었고,
놀던 곳은 어이가 없게 변했고
처음으로 다시 가고싶어 어릴 적으로
내맘속의 태양은 점점 저물어
모르겠어 내 맘속의 나이는 벌써 멈췄어.
난 아직도 어른이란 게 실감이 안나
지금은 시간이 잘가 내일은 내 친구의 결혼식이야
친구야 잘가 언제부터였던가
내가 형이라고 부르는 이들보다
날 형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전보다 더 많아졌어.
망가졌어. 이미 내맘속의 장난감은
어울리게 않게 다시. 하늘은 맑아졌어
hook)X2
지금의 모습이 내 예전의
어린 내 눈 속에 비칠 땐,
그땐 어른으로 느꼈었겠지
하지만 실은 그때와 똑같지
verse2)
나이가 차 어른이란 참
머리가 아퍼 공기가 차
거리는 춥고 어린 꿈들은 죽고,
거니는 거리는 더욱더 춥고,
내가 만났던 여자는 다 중고
마치 너처럼. 줄곧 누군가 썼던 것처럼
싸구려 계집한테 더 이상 상처입지는 않아
바꾸려 하지만 버릇이 쉽게 바뀌질 않아
어느 순간부터 쓸데없는 걱정이
늘어난 삶의 겁쟁이 어리다는 핑계는 내겐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어 그래 예전에 내팽긴 채
버린 것들이 다시 왜
후회가 돼 나에게 오는데 전부터
전부다 모든 것들이 지겨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하지만 일방통행
불법이 불가능해 그게 바로 시간여행
아이에서 어른으로 그 숨이 막히는 진행
너무도, 짧은 소설과도 같은 아쉬운 여행 아마도...
hook)
verse3)
상황이 바뀌었어 이곳을 가리켰어
내가 뿌리를 내릴 장소로 이미 난 다 컸어
토양은 거칠고 차가워 자란 모양은 뒤틀려
이런 기형은 모두가 갖고 있는 정신의 불협음
두려움 그 근원은 낮선 외로움
아직도 내 기억 속엔 어제 같은 졸업식
그래서 난 아직도 철없이
사고치는 아이 같지 단지 나이같이
행동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
못된 짓은 항상 즐겁지 그건 마치 몰래 피는 담배 같지
때론 어른이란 건
놀기보다 할 일이 더 많다는 것 단지 얻게 되는 건
모든 영화와 장소가 합법적인것.
이제는 진짜와 가짜가 보여!
문제는 치사한 수법이 계속 늘어!
확률적인 건 지금 이곳에서
어떤 이는 꿈을 이뤘고, 대부분은 꿈을 잃었어
hook)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