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031 그들이 가지지못한 것





 릴 웨인 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트랜드는 갈수록 빠르게 변화한다. 첵잇해야할 수많은 클래식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광속의 스피드로 변해가는 트랜드까지 뒤쳐지지않고 따라잡기란 쉬운 일만은 아니다. 90년대, 아니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한국 힙합씬에서 언더그라운드의 저력은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그들은 탄탄한 시스템과 전문적 기술력을 갖추고 거대한 자본으로 스타를 양산하는 거대 기획사들이 가지지 못한 음악적 마인드와 센스,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거대 기획사가 그들의 확고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TV를 포함한 매스미디어를 장악했다면 언더그라운드에는 마이크와 무대 그리고 팬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힙합이라는 전지구적 트랜드를 지켜가는 파수꾼이였으며, 별다른 음악관없이 오로지 상품을 내놓는 것에만 급급했던 거대 기획사들은 아무리 자본을 쏟아부어도 언더그라운드의 트랜드에 대한 감각과 실력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것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자존심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그것은 언더그라운드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자부심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불과 3,4년전만해도 제이지, 나스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주변에 몇 없었지만, 이젠 제이지, 나스는 물론 이거니와 말그대로 남녀노소가 모두 모이는 야구장에서조차 플로라이더와 티페인이 흘러나온다.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흑인음악은 소수의 열정, 땀과 눈물로 시작했고 팬들은 TV속에는 없는 우리들만의 순수한 것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힙합 원 러브를 지켜왔지만 더 이상 흑인음악은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TV속의 엠씨몽도 랩을 말하고, 크라운 제이도 힙합을 말한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잡초처럼 자라난 다이나믹 듀오는 최고의 힙합듀오가 되었으며, 에픽하이는 여고생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 그룹이 되었다. 퓨어함과 킵잇리얼을 목숨처럼 여겼던 기존 언더그라운드 팬들에게 철모르는 여중고생들과 내용물없이 줏어들은 것들로 갖은 아는 척을 하며 설치는 힙합 찌질이들의 등장은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겠지만, 어쩌겠는가. 시대의 흐름이 더 이상 그런 것들을 말릴 순 없는 것을.

 그런데 어쩌면 그런 흐름에 대한 반작용이 정말 말그대로 언더그라운드를 저 아래로 점점 가라앉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언더그라운드는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계속해서 그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어하고, 다양함을 받아들이려 한다. 경계를 허물고, 자본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며, 인프라를 갖추고자 노력하고, 거기에 씬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난 실력있는 프로듀서들이 계속해서 등장했고, 실력있는 엠씨는 과장을 좀 보태서 별처럼 많다. 하지만 왜 일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메이져 거대 기획사 앞에서 당당할 수가 없다. 실력과 탁월한 센스, 심지어는 음악적 마인드까지 거대 기획사의 슈퍼스타들에게 추월당했기때문이다. 게다가 거대 기획사의 자본력은 그 차이의 속도를 우주왕복선의 속도로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언더그라운드는 다양성이라고 부르기엔 그만한 실력을 갖춘 식스맨이 부재해있고, 실력을 갖춘 씬의 선두라 해도 몇몇은 마인드를 잃었고, 몇몇은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하며, 몇몇은 잘못을 기형적인 음악시장 구조와 리스너들의 싸구려 귀에 돌릴 뿐, 자신들에게서는 원인을 찾지 않는다. 이젠 누구나 앨범을 낼 수 있으며, 아파트단지 독서실 로고송처럼 엉터리같은 소음으로 당당하게 다양성을 말한다. 10년이 지나도 여전한 스타일에 지루한 사운드를 가지고 본인들끼리는 트랜디한, 새로운 시도라고 자축한다. 겉멋이 잔뜩 든 찌질이들은 권총한자루 없는 가짜 갱스터 놀이에 빠졌다. 몇몇은 빅뱅 같은 건 무시받아 마땅한 음악이라 여기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비쥬얼로 보나, 음악적 센스로 보나, 탄탄한 트레이닝 과정을 바탕으로 한 무대를 휘어잡는 마력으로 보나, 빅뱅보다 나을 것 하나 없는 아마츄어리즘에 찌든 자들일 뿐이다. 언더그라운드는 이제 그 특유의 색깔을 잃었으며, 별처럼 빛나던 엠씨들도 정작 무대 뒤에 가서는 잔뜩 흐린 물에 함께 몸을 담그고 미꾸라지들과 똑같이 내일의 배고픔만을 말하고 있다.

 이제와서는 언더그라운드라는 단어가 어떤 애틋하고도 쉽지 않은 그런 의미를 예전만큼 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 씬의 뮤지션들이 10년이 지난 스타일을 2008년까지도 고수해온 것에 대해서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안타까움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이 그들의 분명한 색깔이 될 수 있다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마저도 랩게임을 껌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자들이 너무나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면서, 클래식한 스타일이 색깔로 남지 못하고, 고인 물이 되버리는 것만 같은 불안감을 지울 수는 없지만.. 더욱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대한민국 힙합씬에서 거의 유일하게 믿을만한 정수기였던 리스너들의 수준조차도 하향평준화되어 스스로 똥물을 정화해낼 수가 없는 수준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랍티미스트가 미국진출을 했다고 흥분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랍티미스트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언더그라운드 프로듀서로 남아있다. 비닐 바지를 입고 엉덩이춤을 추던 박진영은 릴존, 알켈리와 작업을 하고 양현석은 힐리스 신고 인기가요 무대를 헤메던 세븐을 쓰리씩스마피아와 다크차일드에게 소개했다. 언더그라운드가 정체되어있는 동안 자본력이 이끄는 대한민국 메인스트림은 끊임없이 진화했다. 진취적인 언더그라운드와 썩은내 나던 거대 기획사들의 변치않을 것같던 이미지는 불과 몇년 만에 각자가 정반대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박진영의 뉴욕스토리 다큐가 공중파에 방영된 시기를 기점으로 거대 기획사들은 앞다투어 트랜드를 발굴하고 이해하려 하고있다. 기획사 대표들은 스타들에게서 악취처럼 풍기던 공장냄새를 줄이고 그들을 오마리온, 바우와우같은 실력있는 아이돌 스타로 만드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모든 상황이 바뀌어버렸다. 본인들조차도 부정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그 실존이 묘연해진 언더그라운드라는 곳에서 살고 있는 뮤지션들은 이제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인정하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돈만 많았다면 언제든 빅뱅을 밟고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은 자만심과 피해의식의 적절한 혼합물임을 빨리 인정하지 못한다면 남은 방법은 내일 아침도 신라면으로 해결하는 것 하나 뿐이다. 힙합알앤비의 본고장 미국 메인스트림에서조차도 레젼더리 제이지, 레젼더리 나스는 현재 지는 태양이다. 알리샤와 존레젼드 이후로 다시 불씨를 붙이는 듯 싶었던 네오소울도 다시 쏙 들어갔다. 이 흐름이 또 언제 어느 방향으로 물길을 틀지는 아직 예상할 수 없지만 어찌됬건간에 트랜드에 뒤쳐진다는 것은 대중들로부터 버림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거대 기획사가 트랜드를 무작정 따라하는 것처럼 보여도 자신들도 라킴이나 나스, 제이지를 따라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음을 잊어서는 안되고, 제대로 된 마인드와 이해도를 지닌 사람이 자본을 쥐게 되면서 국내 리스너들의 트랜드 수용성에 대한 실험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과 그 음악적 시도 자체에 큰 박수를 보내야한다. 결국 이 과정에서 한국 힙합 뮤지션들의 선택은 다양해질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든지, 저변의 확대든지, 기존의 것에 대한 고수든지간에 확실하게, 프로페셔널하게 할 거라면 어떤 선택도 좋다. 지훵크가 최고이고 영원할것만 같던 90년대 중반에도 지독한 랩귀신이었던 빅엘은 자신의 색깔을 고수했고, 이보다 프레쉬하고 뜨거운 느낌은 없을 것같은 남부힙합이 지배하는 2008년에도 루페 피아스코는 자신의 랩을 한다. 스스로의 음악적 만족이 목표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세상을 탓하며, 음악이 힘들다고, 언제는 포기하고도 싶었다고 계속해서 촉촉한 눈으로 먼 산 바라보며 담배 한 모금 빨고, 한숨 한 번 내쉬고, 투덜댈 셈이라면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인지, 아니면 연구하고 진화하는 뮤지션이 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하기엔 너무나 답이 확실한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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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5 17:25 2008/05/2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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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스릭 2008/06/06 23:02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다. 동감가는 부분이 많네ㅎ
    하지만 너무 결론의 당위성이 이번 태양의 결과물에만 의존하는 느낌이 든다.
    솔직히 이것 말고 다른 박진영이나 와지의 세븐 등의 결과물들이 썩 내세울만한게 없잖아?ㅎ
    거대 기획사에서 진짜 트렌디함을 찾아서 퀄리티 있는 뭔가를 뽑아내려고 하는데는
    아직까지 정말 극소수에 지나지 않으니까.

    언더뮤지션들의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는 완전 동의.
    마인드나 랩스킬이나 하는 지루한 논쟁에서 벗어나 뭔가 새로운시도가 필요한데.

    그런점에서 어비스공연도 힙합힙합힙합 동어반복에서 좀 벗어나서 관객을 만족시켜줄수 있는
    서비스정신이 있는 뭐 그런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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