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032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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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

 이들의 단 한 장의 정규 앨범은 쿠바음악의 전반을 연주하고 노래하고 있다. 앨범에 포함된 장르로는 손, 구아히라, 그리고 쿠반 볼레로(Bolero)와 쿠바식 댄스 음악인 단손(Danzn) 등이 있는데 이 앨범은 음악의 장인들답게 장르적으로 그 스펙트럼이 넓으면서도 일관되게 쿠바음악의 짙은 색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손을 소화해내는 이브라힘의 보컬은 정말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본디 손이란 장르가 쿠바의 동부에서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는 일정 구절을 읊조리는 방식의 곡이었으나 점차 재즈 밴드 형식의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을 이루게 되어 지금의 현대적인 손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브라힘이 이 앨범에서 부른 손 음악 중 가장 아름답고 큰 인기를 얻었던 <챵챵(Chan Chan)> 이란 곡은 구슬프게 울려퍼지는 반복적인 기타 연주가 특징적인데 그 기타연주 위에 펼쳐져 흐르는 보컬 멜로디는 스페인 음악 특유의 화성을 담아내 서정적이다. 동시에 아프로의 느낌이 강하게 담겨진 퍼커션 연주가 삽입되어 곡의 경쾌한 기분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가져가고 있다. 이 곡은 앨범의 1번 트랙으로 전반적으로 구슬프고 아주 서정적인 곡이지만 나이 지긋한 노인들의 보컬은 열정적인 목소리를 통해 힘차게 노래하고 있는 와중에도 섬세한 표현을 해내는 노련함을 보여주면서 곡의 분위기를 기쁨과 슬픔 그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해 주고 있다. 이 노래에서 더욱 압권인 것은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트럼펫 연주라고 할 수 있다. 카네기홀 공연 실황에서는 그 트럼펫의 비중이 훨씬 높은데 무대 위에서 마치 보컬과 대화를 하기라도 하듯이 보컬과 트럼펫이 서로 네 마디씩 주고받는 그 트럼펫의 소리는 매우 뜨겁다. 특히나 이 곡은 가사에서도 그들의 기나긴 지난 세월이 묻어나있기 때문에 곡이 전체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담백한 맛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El cario que te tengo / No te lo puedo negar
  당신에 대한 사랑은 감출 수 없어요.
  Se me sale la babita / Yo no lo puedo evitar
  오직 당신을 원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Cuando Juanica y Chan Chan / En el mar cernan arena
  자니타와 천천히 해변을 거닐 때
  Como sacuda el jibe / A Chan Chan le daba pena
  두 사람의 가슴은 두근거렸죠.
  Limpia el camino de paja / Que yo me quiero sentar
  나뭇잎을 치워주세요 거기앉고 싶어요.
  En aquel tronco que veo / Y asi no puedo llegar.
  바다를 바라보며 당신 곁에 있겠어요.

 긴 세월의 힘은 그들을 자연스럽게 훌륭한 시인으로 만들어주었다. 이미 사랑과 인생에 대한 각자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을법한 나이의 그들은 담담하고도 솔직한 심경을 가사 위에 차분히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그 가사에 더 이상 작위적인 표현이 필요없고, 특별히 시적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 이 음악을 비롯하여 총 14곡의 음악이 담겨져 있는 이 앨범은 이 노래처럼 하나같이 차분하고 담백하면서도 눈물나게 아름다운 곡들로 채워져 있다. 소재에 있어서도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어 어렵지 않게 쿠바음악의 짙은 색깔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쿠바가 비록 작지만 저항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강하다고 믿고 있다. 짧지만은 않은 시간동안 많은 일들을 온 몸으로 겪어온 그들에게 있어서 쿠바는 더욱 특별한 곳일 것이다. 앨범에서는 어떤 제목의 곡인지 찾아내지 못했지만 영화의 중반부에 그들이 녹음하는 노래 중 한 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그러한 쿠바에 대한 특별한 감정에 대해 잘 느낄 수 있다.

   쿠바의 항구엔 특별한 노래가 있다네. / 카리브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곳 /
   그곳의 여인들은 별처럼 아름답다네. / 모두 여인들의 우아함을 칭송하지 /
   그곳은 내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네.

 우리가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 이후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서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 적이 또 있었나. 영화 안에 담겨진 뮤지션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쿠바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쿠바의 삶과 사랑에 대한 태도 역시 매우 열정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그들의 가사에서 유독 ‘불’이라는 단어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내말을 들어봐. 난 불타고 있어. 음악을 계속 하고 싶은데 / 이 밤이 끝나가는데, 우린 아직도 춤추네./
   여자가 기대오면 알게 될 거야. / 남자는 여자를 보면 생각하게 되겠지/난 그런 식으로 살고 싶어./
   너무 힘들지 않다면 말이야. / 이 불 좀 봐. 불타고 있는 날봐. / 이젠 음악도 싫어. 불타고 싶지 않아./
   살고 싶어. 오늘밤 죽기는 싫어. / 하바나도 불타고 다른 곳도 불타고 / 내가 보고 있는 건 다 뭘까/
   불이야 불/여기 모두가 불타고 있어. / 오늘 밤을 즐겨보자고.

 ‘불이 났다’느니 ‘불길에 휩싸였다’느니 하는 가사들에서 실제로 ‘불’이라는 단어는 뜨거운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든 뜨거운 삶을 상징하는 것이든 간에 불같이 뜨겁고 열정적인 무언가에 대해서 말하는 노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순히 이 영화 속 예술가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 내내 교차편집으로 보여지는 평범한 쿠바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쿠바 거리의 풍경은 한산하고 정체된 듯이 보이지만 하바나 항구 변 도로에 하얗게 부서지는 높은 파도는 도시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하바나의 주민들 또한 하나같이 열정적이고 자유로워 보였다. 혁명을 경험했던 쿠바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열정적인 면은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색깔이고, 많은 쿠바인들에게 있어서 열정적인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문을 닫은 후 흩어진 음악가들은 작은 술집에서 홀로 연주를 하기도 하고,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핵심 맴버 중 한명인 보컬 이브라힘은 맨 처음 함께 노래할 것을 제안받았을 당시에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쿠바 3대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루벤 곤잘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뿔뿔히 흩어진 그들을 찾아내어 한자리에 모은 장본인인 라이는 그런 이들에 대해서 단 한마디로 표현한다. ‘그들은 잊혀져있었지만 살아있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처음 접했을 때, 길지 않은 삶에서 꽤 오랜 시간 음악을 사랑해왔고, 앞으로 남은 인생 역시 음악에 대한 커다란 꿈과 열정으로 함께할 나에게는 부러움과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 무엇하고도 바꾸지 않을 젊음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채 현실에 치여 소중한 꿈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졌을 그런 나이에도 불구하고 늘 바래왔던 꿈과 그것이 이루어질거라는 믿음, 그리고 뜨거운 열정으로 죽는 그 날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포기하지 않았던 어느 쿠바 예술가들의 삶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까맣게 잊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다. 이 거장들의 드라마는 내가 먼 훗날 현실에 찌들어 꿈이란 것에 무뎌지고 젊은 날의 열정을 잊어가는 무기력한 중년으로 살아가고 있을 때 쯤, 다시 한번 더 하늘색 꿈으로 가득 찬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도 반드시 저들과 같은 나이 때 비슷한 족적을 남겨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노인들의 음악에서는 세월이 느껴진다. 내 지금 나이대에 걸맞는 나름의 진정성도 있는 것이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어 많은 것을 깨닫고, 느껴서 그 나이가 되고나서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하킴 쿤도는 자신이 함께 일했던 거장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비전문가가 최고의 전문가 같다. 드럼연주자가 아니더라도 정말 어려운 섬세한 터치조차 해낸다. 이곳의 가르침은 색다르다. 섬세하고 조용하지만 강한 힘을 가졌다.’ 그러고 보면 인생과 예술에 있어서 세월이 만들어내는 힘이라는 것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지금은 살아있고 싶어. 좀더 즐길 시간을 줘야지.” - 이브라힘

   “난 살아있는 한 여자를 사랑할거야. 여자와 꽃과 사랑은 정말 아름답거든.
    하룻밤의 사랑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거야. 난 아직 청춘이라구.” - 콤파이 세군도

 나 역시 죽는 순간까지 뜨겁게 살다가고 싶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열정은 내게 있어서 확실히 커다란 감동이었고, 롤모델 삼기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멋진 삶이다. 그들의 음악을 통해 나는 쿠바음악의 매력을 알았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배웠고, 죽어서도 후회하지 않을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쿠바, 잔혹의 역사 매혹의 문화 (2007, 천샤오추에 저/양성희 역, 북돋움)
쿠바 : 혁명과 예술이 숨쉬는 아름다운 섬나라 (2007, 조성철 사진/박후기 글/백영승 그림, 꿈소담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 1999, 빔 벤더스 감독)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 1997, 워너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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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6 10:27 2008/04/2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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