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025 내가 말하는 우리음악
책('전통과 서구의 충돌', 역사문제연구소 엮음, 역사비평)의 내용 중에서도 가장 내 가슴을 자극했던 이야기는 ‘서양음악의 수용과 음악분화의 왜곡’이 담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횟수로 7년 가까이 노래를 해왔고 지금도 틈틈이 곡을 쓰고, 레코딩을 하면서 공연을 하고 있다. 내가 7년간 들어왔던 음악은 힙합, 소울 등으로 대표되는 흑인음악이었다. 나도 처음 노래를 시작했을 무렵, 세계의 음악시장이 백인들의 음악과 흑인음악으로 양분되어있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여겼던 적이 있었고, 이 거대한 조류 속에 황인음악이라는 흐름을 끼워 넣어 보고 싶은 크나큰 꿈을 품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는 흑인음악을 들으면서 그것의 장점을 보다 창조적인 우리의 요소를 결합할 수는 없을까 연구했었고, 실제로 김수철 씨의 음악이나, 신해철과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만남, 숙명가야금연주단의 현대적인 연주 등을 찾아서 들어보고 많은 기대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흑인음악의 강렬한 매력에 그냥 완전히 빠져버렸을 뿐만 아니라 황인음악이라는 개념자체를 포기해 버렸다. 그 부자연스러움 때문이었다. 실제로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이 결합한 예는 해외에도 꽤 있다. 일부 레게나 보사노바 장르에서 남미, 북중미 지역의 전통악기를 사용하는 것이나, 일본 힙합에 일본 전통 현악기 소리를 샘플로 따서 집어넣는다던가 하는 시도가 그 예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신선한 시도로만 기록되었을 뿐 큰 흐름으로 발전하진 못했다. 그 이유는 첫째로 부자연스러움 때문이었다. 신선한 시도로 기록된 몇몇 음악들만이 높은 완성도를 보였고, 그 이외의 시도는 억지스럽기만 하고 지루한, 다소 작위적인 음악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 신해철의 밴드와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협주,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서 태평소 소리는 당시 상당한 센세이션이었지만 그 이후의 것들은 이슈를 바라고 만든 작위적인 시도 내지는 진지한 고민없는 완성도 떨어지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도 인기그룹 SG워너비가 아리랑과 흑인음악 리듬엔 블루스를 접목시켰다고 주장하는 노래를 들고 나왔지만 노래 전반부와 후반부에 깔리는 아리랑은 너무나 작위적인 느낌을 주었고, 또한 그들의 노래와 물과 기름처럼 자연스레 섞이지 않았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할 흑인음악에 대한 이해도 충분하지 않은 모습은 흑인음악이나 전통음악 두 음악 모두에 그 어떤 이해나 애정도 없는 단순히 이슈화하여 대중에게 어필하고자하는 잡탕스러운 발라드 노래 한 곡이 나왔을 뿐이었다. 마치 문희준이 록이란 거대한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이해도 없이 각종 언론에 록과 클래식을 접목한 새로운 장르라고 떠벌리면서 실제로는 단순한 발라드 곡에 강한 기타루프와 드럼세션 등만을 삽입한 단순함을 보인 꼴과 다를 바가 없다.
전통음악은 말 그대로 전통음악이다. 록과 힙합이 성행하는 일본도, 트랜스와 힙합이 음악시장을 장악한 유럽도 각 나라의 고유한 전통음악이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전통음악이다. 심지어 전 세계의 대중음악의 트랜드를 선도하고 있는 흑인들에게도 그들의 음악의 원류를 찾아보면 원주민들의 타악성 짙은 전통음악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우리음악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더 엄밀히 표현하면 전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수준을 넘어서 전통을 사랑하고 아낄 것을 거의 의무시하고 때로는 강요한다. 음악은 하나의 문화다. 그리고 문화이기 전에 예술이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아직도 대중가요 공연을 쉽게 허가하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확실히 이 시대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쉽게 말해 주류 음악은 클래식이나 가곡, 또는 우리 전통음악이 아니라 대중가요다. 나는 음악은 단순히 사람들이 듣기 좋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기호는 다를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음악을 사랑해야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치 학부모가 교무실에 찾아가서 내 아들은 내 자식이니까 신경 써 주셔야 한다고 부탁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사람의 감성을 뒤흔들 수 있다면 충분히 훌륭한 음악이다.
또한 이미 우리의 음악은 우리의 스타일을 찾아가고 있다. 책에서 일본스타일이니 흑인음악 스타일이니 잡다하게 우리 음악이 정체성을 잃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무근이다. 사실 우리나라가 외국의 포맷을 가져다 쓴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비약이다. 실제로 방송에서 흑인음악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들어보면 흑인들이 부르는 것과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한국음악 특유의 뽕끼가 넘치는 발라드 음악이 대부분이다. 제대로 흑인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민을 한 뒤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없거니와 그렇게 만들어도 돈도 안 되고, 좋아하는 사람도 별로 없으며, 일부러 찾아서 듣는 사람은 더 드물다. TV에 나오는 흑인음악이라고 자칭하면서 나오는 것들의 대부분은 흑인문화와 음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겉껍데기만을 핥고 있는 형국이다. 얼마전 10년간 R&B 음악을 해왔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플라이 투 더 스카이’란 그룹이 TV쇼에서 R&B의 핵심은 감정처리, 끝처리, 손처리 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은 대한민국 대중들의 한 음악 장르에 대한 이해 수준이 아직도 얼마나 뒤쳐져있는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흑인음악이라 부르는 것보단 차라리 대한민국의 발라드라고 하는 편이 훨씬 옳다. 이런 맹목적 동경에 대해서 이 책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 음악은 확실히 우리나라의 정서가 깊게 스며들어있다. 김광석이나 김현식, 조용필의 음악을 단순히 미국의 포크송이나 일본의 ‘엔카’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음악에는 그들만의 색깔이 있고 대한민국의 정서가 담겨있다. 이후에 김동률, 이적, 김건모, 윤종신 등의 훌륭한 가수들도 상당히 독창적이다. 형식을 빌려와도 완전히 이해하고, 소화해낸다면 그것은 우리 것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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