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 너에게 묻는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
시인 안도현씨의 94년 작 너에게 묻는다를
처음 읽었을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정이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의 서울을 살던 내가 바로
연탄에서 기름보일러로 기름보일러에서 가스보일러로
넘어가는 그런 세대가 아닌가 싶다.
드라마를 보면 꼭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어느날 연탄가스에 중독되어서 꺽꺽하면서 기어다녔는데
나도 저렇게 되는게 아닌가 하고 지레 겁먹었던 어린시절이었다.
두발자전거 탄 국민학교 형아들의 뒷꽁무늬를 따라서
네발자전거로 온동네를 누비고 다니던 장안동 그 골목골목에는
집집마다 대문밖으로 내다놓은 허여멀건한 연탄재를 흔히 볼수 있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우와 놀러다니다가
엄마 부르는 소리에 저녁먹으러 집에 달려들어갈때 쯤이면
찌든 점퍼를 입고 연탄재를 리어커에 수거해가시는 아저씨와 마주치곤했다.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에는
'와. 그 뭐없는 연탄재를 보고 어떻게 이런 멋진 생각을 했을까?' 하는
시인들의 남다름에 대한 경외심같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그렇다면 나는 어땠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안도현씨의 다른 시, 연탄한장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장도 되지 못하였네.
이 시를 읽을 때면
가슴에 뭉쳐진 그 뜨거운 걸 한숨으로 내뱉곤한다.
열정, 사랑.. 이런 것들은 참으로 뜨거운 감정이다.
자기 인생을 뜨겁게 살다가는 데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법인데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한덩이 재로 남을 때까지 자신을 불태울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내가 이런 정도의 작은 고민을 하고 있을때
시인은 한걸음 더,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 몰랐었네.나는
어찌보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지 모른다.
인간의 이런 무모한 감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이성적 판단에 근거해있다기 보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격렬하고 미친듯한 감정에 있을테니.
3년째 산중에서 지내고 계신 우리 부모님은
아직도
연탄불로 겨울을 나고 계신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그 어떤 사소한 것보다도
썩 나을 것도 없다.
연탄이 자기 온 몸을 불태우고나서 또 산산히 으깨지는 동안도
우리는 다시 새로운 연탄으로 갈아넣고
다 타버린 연탄재와 찌거지들을 치우는 일들을 귀찮아 하는 걸 보면
세상사는 아주 복잡해보이지만
그 원리는 모든 것이 참으로 단순하게 하나로 통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어 슬펐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